욕 나왔던 소개팅 기억 남녀

오래 전, 그러니까 07년에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점심은 시간이 안 되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소개팅엔 그냥저냥 파스타랑 깔끔한 음식이 적당하니까 먹으러 가자고 그랬더니
자기는 면 요리가 싫다는거였다.
뭐 그럴수도 있지 싶어서 그럼 회 어떠냐고 물었더니 생선 비린내가 영 아니라며 빠꾸. 코가 예민하다나 뭐라나?
그러면 스테이크는 어떻냐고 그랬더니 포크랑 나이프가 익숙하지 않다나 뭐라나

이쯤되면 빡치고 나오겠지만 그 때는 무조건 여자한테 잘 해줘야 한다는 노예 모드가 있었기 때문에 죄송하다며 굽신굽신댔다.
졸라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여자가 지하철 역에서 나올 때 삼겹살 집을 봤는데 거기 어떠냐 했다.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네? 냄새 배는데 괜찮나? 시원시원하고 수더분하고 털털하다 싶었다.
이게 굉장히 좋은 인상을 남겼던게 그 전에 연애시대에서 감우성이랑 손예진이랑 고깃집 데이트를 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로망이나 다름없었는데 삼겹살 데이트를 실제로 해볼 기회가 생기니 우왕ㅋ굳ㅋ 모드였다.

그래서 그 여자가 봤다던 가게를 들어갔다.
꽤 많이 먹었다. 둘이서 4인분. 그리고 술도 좀 받아서 두 병인가 세 병인가 마셨다. 소주도 아니고 백세주였나 그렇다.
밥도 먹고 굉장히 즐거웠다. 물론 여자가 꽤 이뻤다는 것도 한 몫 했다.
5만원 정도 나왔었던거 같은데 원래 그 정도 생각했었고 되게 재밌었기 때문에 아깝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자가 또 아이스크림도 샀었고 괜찮았다.

다음 날 주선자한테 전화가 와서
'어제 뭐했음?'
'삼겹살 먹으면서 술 한 잔 먹고 좀 걷고 아이스크림 먹고 헤어졌음. 짱 좋았다.'
'삼겹살을 먹었다고?'
'ㅇㅇ 맛나던데'
'혹시 먹으러 간 곳이 XXX 삼겹살 아님?'
'ㅇㅇ 그런거 같은데. 너님 어찌 암?'

알고보니 그 삼겹살 집 딸....
이런 썅. 나는 그냥 그 집 매상 올려주는 호구였음. ㄲㄲㄲㄲ
그 뒤로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여기까지라면 그냥 뭐 똥 밟았다 싶은데
한 달쯤 지나고 나서 주선자한테 전화오더니
둘이 사귄다고 그랬다. -_-
아주 그냥 쌍으로 가지고 놀았음.


꼬맹이한테 이야기 해줬더니 눈물 콧물 흘리면서 배 잡고 웃더라. 쳇
내일은 고기 먹으러 가야지.


제일 보기 좋게 마무리 지었다. 생각

http://brute91117.egloos.com/2869063

3개월 전 쯤에 존내 답 없는 동기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대학 동기 모임을 만들어서 동기들 결혼이나 상을 당하는 일이 있으면 동기회 이름으로 부조를 하기로 했었는데, 2학년까지만 다니다가 다른 학교로 편입하고 한 번도 연락 없던 여자 동기에게 전화가 와서 동기회 이야기를 꺼내길래 뭔가 좀 이상했다. 거의 4년 만에 갑자기 전화해서 아는 척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른 여자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분이 매우 나빴다. 연락도 없다가 자기 결혼 할 때 되니까 전화해서 부조해달라고 하는 의미로 느꼈다. 심증도 없고 앞으로 그 얘가 부조 받고 입 싹 닫을거라고 확신하면 안 되지만 그 애가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과 애들하고 어울리지 않으려 했던 정황이나 학교 나가면서 학과와 동기 욕을 바가지로 하고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기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서 헐뜯기는 좀 그렇고 동기에게는 동기회 가입 시켜 달라는 전화가 오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다른 동기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나 혼자만 알고 있으면서 동기회 가입은 거절하고 나 혼자 몰래 그 아이 결혼식에 가서 부조를 하고 오는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그게 가장 모양이 좋을 듯 싶었다. 행동이 여러모로 괘씸하지만 그래도 동기고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식이니만큼 부조는 하는게 낫다 싶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엮이고 싶지는 않으니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그 애의 요구 조건인 부조금 30만원을 모두 해주고 관계를 끊는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물론 쌩돈이 나가는 거고 그것도 액수가 더럽게 큰 것이기 때문에 실업자인 내가 모두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그냥 나 혼자 피 보자는 생각에 그리 하기로 했다.

동기에게 거절하는 의사를 전했으니 청첩장도 당연히 오지 않았다. 그래서 싸이를 뒤지고 페북 찾고 그 동기와 친한 또 다른 여자 동기에게 물어서 결혼식장이 어디인지를 알아냈다. 정장을 차려 입고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어디가냐?'
'대학 동기 결혼식이요.'
'동기가 벌써 결혼해? 빠르네?'
'여자니까 그렇긴 한데 좀 빠른 감이 있네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여자 동기가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렸다. 연락 없다가 전화해서 동기회 언급한 것 부터며 학교 다닐 때 동기들에게 했던 행동들과 그 외 이것저것을 다 말씀드렸다. 다른 동기들에게 이야기하긴 좀 그래서 결국 혼자 피보는게 가장 낫다는 생각에 몰래 가서 부조만 하고 잠깐 앉아 있다가 잽싸게 빠져나오려 한다는 이야기도 드렸다. 그러자

'멍청한 놈.'
'어 뭐 잘못했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거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
'뭐가요?'
'괘씸해서 다른 동기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동기니까 부조는 해야겠다, 근데 부조 금액이 부담된다는거잖아.'
'그렇죠.'
'그럼 그런건 내가 내주면 되잖아. 그런데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 멍청한 놈.'
'아니 그걸 왜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요.'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데 이건 머리까지도 고생 할 놈이네.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뭐 그래서 어머니께서 부조금 주시고 그걸 내고 왔다. 당연히 그 동기하고는 인사 안 하고 돈만 내고 왔다. 애당초 내가 왔다는 것도 모를거고 그걸 또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니가 바라던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의미였지만 제일 보기 좋게 끝난 것 같았다.

시집을 가는게 아니라 결혼을 하는 거다. 남녀

설을 맞아서 친한 누님들에게 전화를 드렸다. 설연휴 끝난지 한참인데 이제와서 무슨 전화냐! 싶지만 결혼한지 얼마 안 된 누님들에게 설 당일에 전화하는건 예의가 아니다. 평소에 전화를 잘 하니까 '설날에 전화하면 오래 통화 못 할 거 같아서 지금 하는거임' 이런 이야기를 해도 통하는거지. 에헴 ㄲㄲ 명절 증후군이다 뭐다 시댁 눈치다 뭐다해서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자 전화를 했다. 여자들은 가끔 스트레스가 쌓이면 직접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그냥 들어주는 것과 공감을 표시해주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있으니 내가 그 역할을 하기로 했다. 이런 건 남편에게도 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직계 가족한테 하소연 하면 시댁 식구 흉본다고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쌩판 남인 나는 매형 식구들과 만날 일이 없을테니 내가 들어주는게 더 나을 듯 싶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뒤에 슬며시 설에 어땠냐는 말을 꺼냈는데,

예상대로였다. 누님들 대부분은 설에 전쟁아닌 전쟁을 치렀다며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남편 댁까지 반반씩 운전해서 갔는데 누님은 가자마자 음식하고 매형은 사우나 가고 맥주 마시러 가는건 기본이었다. 일 그만두고 여자는 빨리 애 낳고 집에서 애를 보는게 미덕이라는 시댁 식구들의 쓸데없는 참견도 짜증나고 누님은 금요일도 연가를 내서 미리 내려가 음식 준비에 이거저거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빨리 빨리 올 생각은 하지 않고 스키장 갔다 오느라 늦었다는 동서는 구타유발자였다. 한 달 전에 있었던 시아버님 생신 때 누님이 들고온 선물이 초라했다며 타박하는 2년째 백수인 시누이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고 변호해주기는 커녕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서 자리를 피해버리는 남편은 정말 '남'편 이었다. 차례 지내고 밥 먹었으면 얼른 얼른 일어나서 친정 댁에 갈 생각을 해야지 죽치고 앉아 있는 꼬라지를 보면 열불이 터지곤 했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본다던데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물론 내 인맥이 좁아서 그런 경우를 못 봤을 수도 있다. ㅠㅠ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듯 하다. 매형들도 다들 연애 하기 전에는 매너 있고 누님만 위해주는 남자 친구였다는데 결혼만 하고 나면 왜 다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매형들도 알고보면 상당히 많이 깨어 있는 축에 속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저 모양이라니. 그러고보면 나도 결혼하고 나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법이다. 나는 다를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멍청하다는 것을 인증하는 꼴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좋은 시댁분들도 있었다. 어떤 누님의 시어머님은 설 일주일전에 누님에게 전화를 하셔서 '작년에는 우리 집에서 설을 쇠었으니 올해는 너희 친정 집에서 설을 쇠고 그 다음에 우리 집으로 오거라' 라며 배려를 해주셨고 수요일에 연가를 내서 누님 친정집에서 하루 머물다 올 수 있도록 미리 알아서 조취를 취한 매형도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하루 늦게 도착해서 동서에게 미안했는데 오히려 동서는 몸 괜찮냐면서 잣죽도 끓여줬다며 자랑하는 누님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러한 경우는 소수였고 대개는 고생하는 누님들이 훨씬 많았다.

여자는 며느리로서 시집을 가는 것 이전에 스스로의 의지로 결혼을 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며느리를 무슨, 내가 했던 일을 시킬 막졸 정도로 생각하는 시댁 식구들이 훨씬 더 많으니 골이 아프다.

전 여자 친구의 아버지 남녀

설을 맞아 여기저기 형님들 누님들에게 전화를 했다. 대부분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느라 바쁜 듯 했다. 오래 통화 하지는 못하고 그냥 맛배기로만 해도 한 시간이 넘었다. 설에 한 번, 추석에 한 번 밖에 안 하는 전화지만 그래도 반겨주시니 나도 좋았다. 특히 군대 간부들이 꽤 좋아했다. 제대한지 1년 반이 지났는데 계속 전화하니까 잘 받아주셨다. 그러고보면 일 때문에 힘든거지 사람 자체는 다들 좋다. 군대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니 만큼 하는 만큼 따라온다. '제일 전화 안 할 것 같은 놈이 계속 전화한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전화를 하다보니 배터리가 나가서 교환하려고 배터리를 찾았다. 거실에 있길래 배터리를 바꾸는데 어머니께서

'뭐한다고 전화에 대고 그렇게 말이 많아?'
'설이라서 여기저기 전화 하고 있어요.'
'그래? 혹시 그 분 한테도 전화 드렸냐?'
'누구요?'
'그.. 지금 만나는 애 앞에 만나던 애 부모님 있잖아.'
'아 XX네 부모님이요?'
'그래그래. 전화 드렸어?'
'안 했는데요.'
'아직 안 한 거야 아니면 안 할거야?'
'봐서요.'
'그러지 말고 해라. 항상 했잖아.'
'음.. 알았어요.'

하겠다 말씀드리고 다시 방으로 왔는데 이걸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몰랐다. 헤어졌지만 항상 전화드렸으니 올해도 해야 할 것 같고, 작년 추석에도 전화를 드렸지만 그 때는 꼬맹이랑 만나는 때가 아니었고 지금은 만나니까 전화를 드리기도 좀 뭐하고, 그렇다고 날 좋게 봐주시던 분인데 또 안 하긴 뭐하고.. 그랬다.


전 여자 친구 아버님과는 참 많이 친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식 사위도 아니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고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관계였지만 그 분과 나는 참 많이 친했다. 친구 아버님은 전형적인 한국형 아버지였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일에 모든 것을 쏟다보니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항상 미안해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뚝뚝하고 사근사근함이 없어서 표현을 잘 못하고 직장에서 돌아오면 항상 파김치가 되어 소파에 누워 맥주 한 잔 마시는 모습을 보였으니 친구는 그게 좀 싫었나보다. 게다가 주말에도 출근하는 등 평소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어쩌다 시간이 나면 가족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던걸 전 여자 친구는 생색낸다며 더 싫어했던 것 같다. 때문에 항상 외롭고 고달팠지만 가족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보일 수 없었던 속사정을 가진 아버지였다.

첫 만남은 좀 특이했다. 사귄지 6개월쯤 되었을 때 같이 밥을 먹자며 시간을 내주셨는데 굉장히 피곤해 보이셨다. 쓱 보니까 일이 힘들어서 쉬고 싶지만 딸 남자 친구랍시고 없는 시간 내셔서 피곤한 몸 끌고 나오신 것 같았는데 괜히 내가 더 죄송했다. 그 날 따라 친구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며 그냥 우리끼리 어디 가서 놀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좀 괘씸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에서 친구를 타박하면 또 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는 집으로 보내고 아저씨랑 나 둘이서만 사우나를 갔다. 부대 있을 때는 샤워만 했지 목욕을 해본 적은 없다면서 사우나 가자고 우겨댔다. 욕탕에 가서 몸을 담그고 사우나를 하고 목욕탕 의자에 누워 쉬는데 아저씨는 한참을 주무시고 나서야 일어나셨다. 특별히 나눈 대화는 없었는데 아마 그 날 점수를 꽤 많이 딴 것 같았다. 딸만 둘이고 아들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목욕탕에서 나오고 난 뒤 표정이 좋으셨다. 그 뒤로도 휴가 나오면 꼭 시간 내셔서 저녁도 사주시고 그랬다. 나는 딸 가진 아버지 입장이라면 딸의 남자 친구가 아무리 잘 나고 학벌 좋고 능력 좋고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죄다 도둑놈으로 보일 거라 생각해서 저(低) 자세로 나갔는데 그것도 잘 먹힌 것 같다. 내가 꽤 마음에 드셨는지 키도 작고 왜소한 나를 보고 듬직하다 해주셨고 (대체 어디가!) 시종일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제대하고 난 뒤에도 핸드폰에 아저씨 번호가 등록이 되어 있었고 가끔 전화 드릴 때 마다 잘 받아주셨다.

다만 아쉽게도 헤어지고 나서는 그 전 만큼 자주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고 작년 여름에 한 번, 그리고 추석에 한 번 전화를 드렸다. 그 때 반겨주시면서도 헤어지게 된 원인이 딸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별 때문에 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그닥 밝지만은 않았다. 그냥 저냥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오래 나누지는 못했다.


전화기를 들어서 번호를 찾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인사를 드렸다. 예전 보다는 꽤 밝게 받아주셨다. 안부를 여쭙고 새해 인사를 드리자 아저씨도 덕담을 해주셨다. 그러다가,

'그래 올해 졸업이지?'
'네.'
'너무 급하게 마음 갖지 말고 천천히 자리 알아보게나.'
'고맙습니다.'
'음.. 그리고 말인데.. 혹시 만나는 사람은.. 있나?'
'아... 네 있습니다.'
'그런가? 그래.. 잘 만나고.'
'네. 알겠습니다.'

침묵 속에 참 많은 말씀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꺼내긴 뭐하고.
그랬다.

오늘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대신 문자로 고맙다는 메세지가 왔다. 답은 하지 않았다.

(15금) 딱 걸렸어 남녀

학교 동기랑 오랜만에 채팅을 했다. 잉여스럽게 살다보니 시간이 더럽게 안 가는데 오늘은 좀 잘 갔다.
동기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나로서는 이거저거 물어볼 것도 많아서 꽤 도움이 되는 대화였다.
그런데,

'오빠 어제 눈 많이 왔잖아.'
'ㅇㅇ 그랬지. 깜짝 놀랐음.'
'나 어제 야근하고 집에 가려고 나왔더니 눈이 펑펑 오는거야.'
'ㅇㅇ 당황했겠네.'
'그래서 우리 대리님이랑 이야기를 해봤어.'
'대리님도 같이 야근했나?'
'ㅇㅇ 근데 나랑 잘 맞고 그래서 둘이 있을 때는 거의 언니 동생이나 다름없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눈 많이 오니까 같이 모텔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고 그랬어.'
'ㅇㅇ 괜찮네. 야근하고 화곡동까지 가려면 힘들잖아.'
'ㅇㅇ 그러니까 말이야. 방배까지 왔다갔다 힘들단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대리님이랑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했는데?'
'엄마가 미쳤냐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막 그랬다'
'모텔 가서 자고 간다고 그러니까?'
'ㅇㅇ 막 나한테 제 정신이냐면서 멍청하다고 막 뭐라하고 혼났어.'
'토닥 토닥. 쓰다듬 쓰다듬해줄게여. 혼나서 기분 많이 상했겠다.'
'그니까 말이지.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데 자꾸 뭐라하니까 짜증났단 말이야.'
'그러게.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너무 못 믿네.'
'왔다갔다도 힘들고 언니나 다름없는 대리님이니까 괜찮잖아.'
'ㅇㅇ 그렇지.'
'근데 우리 엄마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엄마는 걱정한다고 하는데 그게 좀 심하셨네. 나 같아도 화 날만 하다.'
'ㅇㅇ 좀 너무한거 아님?'

뭐 이러면서 이야기 잘 들어주고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있었는데

'맥주 사들고 모텔 가서 샤워 한 다음에 마시면서 인터넷 하면 재밌는데. 완전 짜증났어.'
'응?'
'모텔에 가면 인터넷도 우리 집 보다 빠르단 말이야. 침대도 크고 푹신푹신하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있을거 다 있어.'
'너.. 모텔에 그런거 있다는 거 어떻게 알어?'
'다 있지 않나.'
'아니 그러니까 있는건 맞는데 가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있는지 없는지 알어?'
'그냥 알아.'
'너 내가 알기로는 아직 연애를 해본 적이 없을건데?' 공식적인 연애가 없었던거냐 아니면 숨긴거냐.'
'모텔 다 똑같지 않나'
'ㄲㄲㄲㄲ 말 돌리지 말고.'
'몰라'
'야 빨랑 불어. 어떻게 알았어?'
'몰라 몰라 나는 몰라.'
'ㄲㄲㄲ 구라 치지 말고.'
'오빠는 어떻게 아는데?'
'나는 연애 해봤잖아. 그러니까 알지.'
'변태'
'그게 왜 변태야 ㄲㄲ 근데 넌 남자 친구 사귄 적 없다고 해놓고 그건 어떻게 아는데? ㄲㄲㄲ'
'친구들이 이야기 해줬어.'
'야. 친구들이 해준 이야기 치고는 너무 디테일한데? 침대가 푹신푹신한지는 어떻게 알고? ㄲㄲㄲ'
'그것도 친구들이 이야기 해줬어. 내 친구 XX 있잖아. 여자들은 서로 그런 이야기하면서 친해진다.'
'구라 치네 ㄲㄲㄲ 빨랑 자수해서 광명 찾아라.'
'몰라.'

이렇게 약점을 하나 잡았네. ㄲㄲ
흠흠.. 그런데..
여자들은 음.. 그러니까.. 친한 동성 친구들끼리 정말 그런 이야기를 하나?
아주머니들은 그렇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미혼 여성들도 그러나? 그럼 좀 당황스러운데?
여자 친구랑 친한 동성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을건데 정말 그럼 얼굴을 어떻게 보지?
아니겠죠? 아니어야..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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